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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은 현명함의 기초다

트라우마를 부정하라

by 폰스키어 2023. 2. 3.

인간은 변할 수 있다.

  인간은 누구나 변하기를 고대하는 것처럼 보인다. 과거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길 바라기도 하고, 지금보다 더 좋은 자신이 상상하는 모습으로 변하길 고대한다. 그리고 그건 과거에도 마찬가지였다. 현재의 자신의 모습을 보았을 때 어떤 부분 때문에 현재 자신의 모습이 이렇게 되었는지 곰곰히 생각해보자. 잠깐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볼 것이 있다. 우리는 모든 결과는 원인이 있다는 전제에서 생각을 시작한다. 즉, 과거의 사건(원인)이 현재의 나(결과)를 규정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과거의 원인에 주목해서 상황을 설명하다보면 모든 이야기는 결정지어지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의 방향성은, 우리의 현재는, 우리의 미래는 전부 과거 사건에 의해 결정되고 움직일 수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우리는 미래를 현재 내가 깨달은 방향으로 설계하길 원하면서도 나의 과거 때문에 발목잡혀 있는 것처럼 움직이게 된다.   예를 들어 '나는 현재 6천만 원을 근로 소득으로 벌 수 있는 사람이고 사업을 할 줄 모르니, 10년 후에는 300만원씩 월마다 모은다면 3억 6천만원 정도 모을 수 있겠네'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즉 우리의 현재는 과거의 사건에 의해서 결정되어졌고, 우리의 현재로 우리의 미래를 결정짓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을 '원인론'이라고 부른다. 프로이트 심리학에서 얘기하는 대표적인 관점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와 반대되는 관점은 아들러의 개인심리학에서 얘기하는 '목적론'이 있다. 현재 내가 불안해서 집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공포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바깥에 나갈 수 없다라는 목적이 먼저고 그 목적을 달성하는 수단으로 불안과 공포 같은 감정을 지어낸다고 보는 것이다. 아들러의 개인심리학에서는 트라우마를 부정한다. 즉, 트라우마가 원인이라고 일반적으로 생각되는 현상은 사실 그 현상을 목적으로 트라우마를 수단으로 활용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 때 우리는 어떠한 경험도 그 자체는 성공의 원인도 실패의 원인도 아니다. 우리는 경험을 통해서 받은 충격으로 고통받는 것이 아니라, 경험 안에서 목적에 맞는 수단을 찾아낸다. 경험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경험에 부여한 의미에 따라 자신을 결정하는 것이다. 즉 경험 그 자체가 아니라 경험에 부여한 의미에 따라 자신을 결정하는 것이다. 인간은 포유류의 뇌(변연계)를 가지고 있음과 동시에 인지적 작용을 할 수 있는 뇌(전뇌)를 가지고 있다. 아들러의 개인심리학은 경험의 해석을 변연계에 맡겨 둠으로써 환경에 매몰되는 것이 아니라, 인지와 목적론적인 사고를 통하여 경험을 재해석함으로써 변연계을 이끌어가는 것을 강조한다. 

답답하더라. 부모가 관습적으로 나를 대하는 것이, 여자친구가 바람펴서 헤어졌을 때의 공포가, 매일 반복되는 나쁜 습관들이, 나의 생각이 주변에 인정을 받지 못할 때, 계속해서 문제가 발생함에도 바뀌지 않는 회사의 시스템이.
매일 불평하고 스스로 스트레스 받았지. 왜 바뀌지 않냐고 불만을 품었어. 그렇게 지내다가 깨달았지. 모든 변화는 외부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시작하는 것임을. 바로 지금 이순간부터 내가 무엇을 생각하고 실행하는 순간부터 변화가 시작될거야.

인간은 분노를 지어낸다.

  개인심리학에서 그렇다고 감정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인간은 감정에 저항할 수 없는 존재다라는 전제를 결코 거부한다. 감정에 지배를 받아서 움직이지 않는다라는 것과 같은 맥락으로 과거에도 결코 지배받지 않는 논리를 펼치는 것이다. 즉 감정은 원인 자체가 될 수 없으며 단지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라는 것이다. 우리는 대중이 많이 알고 있는 인본주의적인 사고방식에서 의문점이 생길 것이다. 우리가 배운 '인간답다'라는 표현은 우리에게 실수할 수 있고, 완벽하지 않다.', '모든 상황에서 감정과 행위를 통제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라는 전제를 깔고 있기 때문이다. 희로애락에 흔들리는 것이 인간의 매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또한 불쾌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감정에 영향을 받지 않는 것이라면 인간은 이성적으로 완벽히 통제될 수 있다고 얘기하는 것인지, 마치 명령어를 입력하면 명령어대로 행동하는 기계와 같은 존재라고 얘기하는 것인지, 현재 우리 주변을 둘러봐도 그런 사람이 없다고 얘기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의 핵심적인 목적인 '인간의 변화'를 계속 주목해야 한다. 우리가 만약 과거의 원인 그자체를 아무 해석없이 받아들이게 된다면 우리는 변화할 수 없다. 우리는 대체적으로 다른 사람들이 인정하는 방향으로 흘러갈 것이기 때문이다.

'부모님이 이혼하면서 부모님과 별거하게 되면서 내가 의기소침해지고, 소극적으로 바뀌었어.'

'아버지가 술을 좋아하셨기 때문에 내가 술을 좋아하는거야.'

'부모님과 사이가 좋지 않기 때문에 현실을 잊고 싶어서 게임을 해.'

'부모님이 돈이 많지 않기 때문에 나는 조력을 받을 수 없어. 따라서 나는 빠르게 부자가 되기 힘들고 내가 힘들게 일하는거야.'

하지만 여기서 놓친 것이 있다. 다른 사람이 인정하는 방향성, 혹은 현재의 자신이 고통을 덜 받는 방향성으로 우리의 생각을 돌린다는 것이 중요하다. 즉, 타인이 인정하는 나의 원인에 따른 결과를 만드는 것을 위해 그러한 감정과 행위를 현재에 진행한다. 결국 우리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우리의 목적은 타인의 인정이나 현재의 내가 고통을 덜 받거나, 편하다는 방향성인 것이다.  

당신은 '이대로' 좋습니까?

'나는 부모님처럼 되고 싶다.'

'나는 누구처럼 되고 싶다.'

이런 생각의 시발점은 무엇일까? 이 생각의 목적은 무엇일까?

그 친구처럼, 우리 부모님처럼 된다면 행복할 것 같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가 그처럼 되면 만족할거야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는 결국 현재 나는 행복하지 않아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결국 나는 현재 나의 행복을 실감하지 못하고 있다. 왜냐하면 나는 나자신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인정해야 한다. 아무리 내가 원하는 모델처럼 되고 싶다하더라도 그 모델로 다시 태어날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따라서  현재 나의 모습이 나임을 받아들여야 한다. 나는 내 모습으로 살되 이대로의 내 모습이 괜찮지 않다면, 만족스럽지 않다면 한 발짝 앞으로 나가야 한다. 중요한 것은 무엇이 주어졌느냐가 아니라 주어진 것을,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다. 변화와 행복은 A에서 B로 교환될 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나에게 필요한 것은 교환이 아니라 고쳐나가는 것임을 받아들여야 한다. 

현재의 '불행한 상태,행복한 상태'는 스스로 선택한 것이다. 

 회사에서 일이 정말 많았다. 그리고 상사와 일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감정적으로 지쳤다. 매번 이런 일들이 나를 힘들게 한다. 아내와 상의하며 집을 샀지만 집값이 내렸다. 왜 이 타이밍에 집을 샀는지 아내의 말에 귀를 기울인 것이 후회된다. 대출이자가 많이 나와 생활비가 빠듯하여 힘들다. 왜 이렇게 금리가 높은지 모르겠다. 회사의 연봉인상률이 낮다. 회사에서 일하는 동료가 성격이 모나 같이 어울리기 힘들다. 이런 얘기는 직장생활을 하다보면 동료들에게 많이 들을 수 있는 말들이다. 인간은 끊임없이 변하지 않겠다고 결심한다.  우리는 이런 말과 글에서 숨겨진 전제와 방향성을 발견할 수 있다.

  회사에서 일을 많이 주었기 때문에 지금 내가 (그 일에 맞추어 변화해야 되기 때문에) 힘들다. 상사와 일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나와 맞지 않아(나에게 맞춰주지 않아) 지쳤다. 매번 이런 일들이 있지만 (나는 그것들을 개선하거나 준비할 생각이나 노력이 하지 않지만, 일들이 알아서 단순화되거나 개선되지 않기 때문에) 힘들다. 아내와 상의하여 집을 샀지만 (집값이 내릴 때 계획하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집을 살 때 스스로 의사결정을 확실히 결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힘들다. 여자친구가 나에게 의견을 잘 주지 않아서(내가 의견을 물어보지 않아서)  힘들다.

  인간의 성격이나 기질은 변하지 않는다라고 얘기한다. 하지만 아들러는 인간의 성격이나 기질을 생활 양식(life style)로 정의한다. 생활 양식은 삶에 대한 사고나 행동의 경향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 또한 결국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다. 변하지 않는 인간에 대한 설명이 이를 통해 정리된다. 인간은 언제든, 어떤 환경에 있든 변할 수 있지만, 스스로 변하지 않겠다라고 결심하고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생활양식을 바꾸는 것은 큰 용기가 있어야 한다. 변함으로써 생기는 '불안'을 선택할 것인지, 변하지 않아서 따르는 '불만'을 선택할 것인지를 선택해야 한다. 

나의 인생은 '지금,여기'에서 결정된다.

결국 내가 꿈꾸는 두근거리는 결과, 나은 미래, 좋은 모습을 위해 내가 해야할 일은 한 가지다. 지금의 생활양식을 버리겠다고 결심하는 것이다. 만약 그 모델처럼 된다면 나는 행복해질 수 있어라고 생각하는 만약의 가능성을 버리는 것이다. 결국 내 인생은 지금, 여기에서 결정되는 것이다. 과거는 내 주어진 것일뿐, 내 미래를 결정하는 결정적 요인이 아니다.

 

과거의 너가 세상을 해석했던 지도를 찢어버려. 그리고 새로운 지도를 그리는거야.

선택해.현재를 유지하며 불만을 갖고 살래, 아니면 불안할 수도 있지만(아닐 수도 있고) 더 나은 모습으로 변화해볼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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