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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은 현명함의 기초다

타인의 과제를 버리라.

by 폰스키어 2023. 2. 3.

인정욕구를 부정하라

  인간관계의 고민은 어디서 시작되는걸까? 왜 부모님의 기대를 충족하지 않을 때 고통스럽게 느끼는 걸까, 주변 사람들이 내가 얘기한 말을 틀렸다라고 얘기할 때 위축되거나 분노하게 되는걸까, 주변 사람들의 나에 대한 평가가 비수처럼 꽂히거나 기분이 좋아지는걸까. 이러한 현상은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어하는 욕구에서 시작된다. 아들러의 개인심리학에선 타인에게 인정받기 원하는 마음을 부정한다. 즉, 타인에게 인정받을 필요가 없고, 도리어 인정받기를 바라서는 안 된다.

타인에게 인정을 받는 것은 확실히 기분이 좋은 일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고, 칭찬받고 싶은걸까? 이는 우리가 타인에게 인정받음으로써 '나는 가치가 있다'라는 것을 실감하고 열등감을 없앨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자신감이 생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정욕구의 위험성은 바로 인정이 없을 때 행동의 제약이 된다는 점에서 나타난다. 예를 들어 직장에서 쓰레기를 치우는 것을 동료가 알아차리지 못하거나 알고 있지만 누구도 고마워하지 않고 인사 한마디 건네는 사람이 없다면 타인에게 인정받는 것이 목적인 사람은 행동을 그만두거나 의욕이 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왜 인간은 타인의 인정을 바라는걸까? 이는 상벌교육에 있다. 적절한 행동을 하면 칭찬을 받는다. 부적절한 행동을 하면 벌을 받는 상벌 교육은 결과적으로 칭찬하는 사람이 없으면 적절한 행동을하지 않고, 벌주는 사람이 없으면 부적절한 행동을 한다라는 생활양식을 가지게 된다. 결론적으로 타인의 기대 같은 것은 만족시킬 필요가 없다. 이게 매우 이기적인 말처럼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나는 나만의 인생을 살고 있다. 따라서 나를 위해 살아야 되며, 나를 위해 살지 못한다면 내 인생을 누가 살아줄 수 없다. 궁극적으로 나를 생각하며 사는 것이다. 인정하기를 바란 나머지 '이런 사람이면 좋겠다'라는 타인의 기대를 따라 사는 것은 진정한 자신을 버리고 타인의 인생을 살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억하자.

'나는 타인의 기대를 만족시키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다.'

이는 타인도 마찬기지이다. 타인 또한 나의 기대를 만족시키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다. 회사에서도 업무의 목표 자체가 '타인의 기대를 충족시키는 것'이 되면 그 일을 하기가 괴로워진다. 늘 타인의 시선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다른 사람의 평가에 전전긍긍하느라 자신의 존재를 억누르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심리상담을 받으러 오는 사람중에 성격이 제멋대로인 사람은 거의 없다. 오히려 타인의 기대, 부모와 선생, 남편, 아내의 기대에 부응하려고 애쓰다가 괴로워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다. 결국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괴로워하는 것이다.

나와 타인의 과제를 분리하라.

  그렇다면 우리는 타인의 기대를 만족시키지 않고 나다움으로 살기 위해 무엇을 먼저 시작해야 할까.

가장 먼저 우리는 '이것이 누구의 과제인가?'라는 관점에서 자신의 과제와 타인의 과제를 분리해야 한다. 누구의 과제인지를 구분하는 방법은 그 선택이 가져온 결과를 최종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누구인가를 생각하는 것이다. 

이것은 방치가 아니다. 부모가 훈육을 하는 것은 아이가 유아기에 세상을 향해 기고 걷고 달려가기 시작할 때 무엇이 타인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악인지를 분명하게 가르치는 것이다. 하지만 아이가 공부에 흥미가 없음에도 공부를 억지로 시키는 것은 '아이를 위한 것'이 아니라 '부모인 자신을 위해서'임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세상의 이목, 체면, 지배욕 등 명백히 자신의 목적을 만족시키기 위한 것이다. 이는 방치나 방임을 하라는 것이 아니다. 방임이란 아이가 무엇을 하는지도 모르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아이가 무엇을 하는지 알고 있는 상태에서 지켜보며 만약 아이가 공부에 관해 본인의 과제라는 것을 알린다면, 본인이 공부하고 싶을 때는 언제든 도울 준비가 되어 있다는 의사를 전하는 걸 얘기한다. 단 아이의 과제에는 함부로 침범하면 안된다.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이래라저래라 잔소리를 해서는 안 된다. 심지어 아이가 방에 틀어막혀 있을 때도 마찬가지다. 

 

진정한 자유란 타인에게 미움을 받는 것이다

 명심할 것은 과제의 분리는 인간관계의 최종목표가 아니라는 점이다. 과제의 분리는 인간관계에서 나와 타인의 진정한 자유를 향하는 입구이다. 타인에게 미움받고 싶지 않은 마음은 인간에게 자연스러운 욕망이자 충동이다. 하지만 이러한 욕망과 충동에 이끌려 사는 것은 비탈길을 굴러 내려가는 돌멩이처럼 사는 것이 진정한 '자유'일까? 이런 삶은 오히려 욕망과 충동의 노예가 되어 사는 것이다. 따라서 본능이나 충동에 저항하거나 그것을 지나쳐 살아가는 것이 자유이다. 즉 자유란 타인에게 미움을 받는 것이 내가 자유롭게 살고 있고 스스로의 방침에 따라 살고 있다는 증표이다. 남에게 미움을 받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가능하면 누구에게도 미움을 사지 않고 인정받고 싶은 욕구를 충족시키며 살면 좋겠지만,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지 않는 건 부자유스러운 일이다. 따라서 자유를 행사하려면 대가가 따른다. 타인에게 미움을 받는 것이다.  이는 미움을 억지로 받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정확히 얘기하면 미움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라는 뜻이다. 일부러 미움받을 짓을 하라고 부추기거나 나쁜 짓을 저지르라는 것으로 오해해선 안된다. 

 

  이 때 한가지 의문이 든다.

인간은 자유의 무게를 견딜 수 있을까? 인간이 계속 미움을 받은 상태로 살수 있을 정도로 강인한 존재인가?

하지만 이 전제는 잘못 되었다. 우리는 현재만을 살아간다. 앞으로 다가올 미래도, 우리의 과거도 통제가능하지 않다. 나의 과제는 단 한가지 현재의 자유의 무게를 견디기만 하면 된다. 미래의 나는 그 미래의 에너지와 용기를 가지고 움직인다. 또한 만약 미래의 어느순간 내가 자유의 무게를 견디기 힘들어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를 가지고 살고 있다면 그 때 그 미래가 현재인 내가 그런 나의 욕구를 부정하며 다시금 나의 과제와 타인의 과제를 분리하여 진행하면 되는 것이다. 결국 지금 나는 과거도, 미래도 아닌 지금 이순간에만 그 자유의 무게를 견딜 용기만 가지면 되는 것이다. 현재의 내가 가진 에너지와 역량을 과소평가해서도 안되지만, 과대평가해서도 안된다. 우리는 24시간이라는 오늘의 가로축 공간을 살고 있을 뿐이고 그 공간에서 걸을 수 있는 에너지를 가지고 현재를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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